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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9일 제목: 마음을 지킬 수 있는가?
김종곤 2024-06-09 추천 0 댓글 0 조회 32
[성경본문] 잠언4:20-27 개역개정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69일     제목: 무엇으로 마음을 지킬 수 있는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4:23)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라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에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이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4:24-27)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켜라(4:20-21)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솔로몬이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들이 들었는가?

왕위를 이어받은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인데 그는 지파 간의 갈등과 원로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백성들에게 강압적인 정치를 하였다.

열 지파가 르호보암을 떠나 북이스라엘을 세우자 르호보암이 전쟁을 하려 하였으나 전쟁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를 통하여 듣고 열 지파와의 무력충돌을 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르호보암은 그가 다스리는 남 유다가 어느 정도 나라가 안정되자 율법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갔다.

솔로몬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듣고 아버지의 말을 마음에 두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로몬도 말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새라는 사람의 막내아들로 양치는 소년이었다.

그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중에 있었는데,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하나님의 이름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독하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물멧돌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죽입니다.

스무살도 안된 소년이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가 일시에 블레셋을 공격하여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소년 다윗을 이스라엘 군대의 장관으로 발탁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자기보다 다윗을 높이는 여인들의 노래를 듣고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고난의 세월을 10년이 넘게 보내고 사울이 죽은 후에 삼십에 이스라엘 두 번째 왕이 되어 40년을 다스리다가 70에 세상을 떠납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으나 그도 왕이 되고 나라가 평안할 때 심각한 두 번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즉각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하지만, 그 죄의 결과는 다윗의 생애 말년에 다 감당하게 됩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으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대로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열상 2:1-4)

솔로몬이 아버지의 유언을 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20세였고 솔로몬은 어머니가 다른 형들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되어 나이 이십에 이스라엘 세 번째 왕이 됩니다.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고 일천마리의 양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제사를 드리고 인도함을 구합니다.

 

그날 밤에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되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말합니다.

 

종은 출입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입니다.

누가 이 많은 주님의 백성을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사 선악 간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고 듣는 마음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자기를 위하여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네게 지혜와 깨닫는 마음을 주노라

너 같은 자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너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주노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걸어간 것처럼 네가 내 규례들과 명령들을 지키며 내 길로 가면 내가 네 날들을 길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이십에 왕이 되어 40년을 다스리다가 육십에 세상을 떠납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무강한 나라가 되고 평안이 있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성경을 세 권이나 쓴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겸손한 솔로몬이 부와 명예를 넘치도록 누리고 아내로 삼은 많은 여인들로부터 마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고 맙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서 약속하신 것을 거두지는 않지만, 솔로몬의 삶은 60에 막을 내리고 그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는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왕도 모든 것이 평안할 때 하나님 앞에서 죄로부터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넘치도록 부와 영광과 지혜를 받은 솔로몬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는 잠언을 남긴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말년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삶에서 결정적 차이가 무엇일까요?

다윗은 죄를 범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감추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행위를 보고 있었고 선지자를 보내 책망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즉각 시인하고 눈물과 애통함으로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가 말년에 아내들이 섬기는 우상 신전을 지어주기도 하고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내가 부족할 것 같다면 이것도 주고 저것도 더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시고 그를 책망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10지파로 형성된 북이스라엘은 18명의 왕이 지나가지만 전부다 악한 왕들이었다.

 

유다 지파 다윗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남 유다도 19명의 왕이 지나가지만 선한 왕은 몇 되지 않고 그들도 끝까지 마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완전히 멸망합니다.

남 유다도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성과 성전은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애타는 심정으로 선지자를 보내고 또 보내어 내 백성아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와서 살길을 찾으라고 그토록 불렀어도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말미암은 이삭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하게 행하지 못할 것을 모르셨을까요?

여호수아에게도 알게 하셨고 모세에게도 알게 하셨는데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모르셨을까요?

당신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할 것을 모르셨을까요?

 

그렇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다 알고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노아의 큰 아들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부르사 고향,본토 친척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보내시고 백 세가 된 아브라함과 구십이 된 사라를 통하여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나게 하시고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열국의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무엇입니까?

열국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나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못할 것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실패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열국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하셨고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당신의 본성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사 아담을 사랑의 존재로 지으셨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위를 그에게 주었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속이는 영을 따라갔어도 그들을 하나님께서 사랑의 존재로 세상에 두셨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무엇으로 인하여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말을 듣고 따름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사망이 세상에 선포되었는데 왜 죄의 책임과 그 결과가 사람에게 있는데 하나님이 사람의 책임을 지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구속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자기 목숨도 대신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말씀인 성경을 주셨을까요?

왜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창세 때에 말씀으로 계셨던 성자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으로 처녀에게 잉태되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의 죄를 감당하사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성경으로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사람이 사람의 행위로는 결단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의 예정 안에 있는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칠 때 이스라엘은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집은 넘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홍해 바닷가에서 애굽 군사들이 자신들을 치려 할 때 불기둥이 막아서고 홍해 바다가 갈라져서 그들이 지나가고 뒤 따라온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가 다시 합쳐짐으로 전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내산 꼭대기에 빽빽한 구름과 천둥소리 가운데 하니님의 임재의 말씀을 귀로 들었습니다.

광야의 길을 갈 때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인 만나를 40년 동안 먹었습니다.

바위가 터져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마셨습니다.

물이 넘치는 요단강이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그 요단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요단강물이 끊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행위로 결단코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거룩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거할 수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스스로는 결단코 거룩에 이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어 사람이 되어 오사 자기 피로 당신의 자녀를 덮으사 거룩하게 하여 세상과 구별하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본성이 타락해버린 사람의 한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이렇게 하자고 말씀하시는 것을 넘어 자녀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나와 같이 걸어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손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 귀에 들립니까?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고 우리의 입술의 말과 삶의 실천으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말씀의 역사가 성도의 삶에서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릴 뿐만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고 우리의 입술의 말과 삶에 실천으로 나아가면 성도의 삶에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왜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까?

무엇으로부터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까?

 

오늘날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마음을 빼앗아가는 수많은 것이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생각들로 지으진 견고한 집이 자신 안에 있을 수 있음에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거듭나기 전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죄가 된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태어났기에 사람은 어려서부터 옳고 그름이 바르게 양육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큰 불의를 행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해를 키치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죄를 용서받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스스로 믿을지라도 거듭나기 전 사람의 무정한 말들과 경험한 것과 환경의 영향으로 옛 사람이 내 안에 심어놓은 생각의 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체인지 되기 전에는 평생 동안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란 점에서 안심할지 모르지만 나는 기독교인이야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는 것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여전히 불신앙, 사랑의 냉냉함, 두려움, 교만, 용서치 않음, 정욕, 욕심,등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호하는 것에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 속에서 눌림을 받는 곳을 분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하여 인식하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 생각을 항상 정당화하고 변호하고 또 설득하려고 합니다.

나는 괜찮아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을 주님 앞에서 종용히 겸손한 마음으로 항상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낮추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것입니까?

사람에게?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말하고 주님께 도움을 바라고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은혜을 입은 성도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피와 생명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이천년이라는 역사가 지나가는 시점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시는 그 기준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지만, 그 분이 곧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님이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목적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목숨을 걸고 악과 싸워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에서 믿음 지킨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를 읽고 들어 보았습니까?

 

오늘날 우리 안에 진실로 듣는 마음의 공간이 좁쌀보다 더 작은 겨자씨같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시편 95편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너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뻣뻣하가 하지 말라고 합니다.

듣는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열어라고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라오디아 교회와 성도에게 말한 바와 같이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나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바로 우리가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강제로 열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믿음 없이 결단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물리적인 힘으로 무엇을 요구하거나 동의하게 하거나 굴복시키려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나는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행하면 그 목적하는 것을 해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기에 자신에게 칭찬과 자랑을 돌립니다.

 

그러나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삶의 우선 순위가 내가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께 있음을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마음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이란 그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심어놓은 본질적인 것이 있고 다른 인격이 불법으로 심어놓은 본능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어놓은 본질적인 것은 선함을 목적하는데 다른 인격이 불법으로 심어 놓은것은 본능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을 목적합니다.

 

무엇이 선한 일인가?

무엇이 악한 일인가?

이를 분별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사람이 양심에 의하여 선과 악을 인식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반드시 세상이 원하는 관점으로 변질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말할 수 있고 사랑으로 격려하고 주의 이름으로 위로할 수 있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삶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그분의 말씀이 내 안에 있음으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위협과 사람의 무정한 말과 행동으로부터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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