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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1일 제목; 누가 마음을 지키는가?
김종곤 2024-09-01 추천 0 댓글 0 조회 18
[성경본문] 잠언4:20-27 개역개정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91일 제목: 누가 마음을 지키는가?

본문: 4:20-23

사람은 생명이 두 개가 있습니다.

목숨은 하나인데 생명은 둘이라는 것입니다.

곧 육체적 생명과 영적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인데 사람의 육체적 생명은 몸에 있기에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기에 다 압니다.

그러나 영적 생명은 사람의 마음에 있기에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생기를 호흡에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곧 사람의 영혼의 발원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가? 죽어 있는가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곧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는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 학자 니고데모의 예)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영적 생명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땅의 것으로 한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창조)을 부인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하면 사람이 생각에 반응한 모든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에 반응한 행동의 결과가 육체적 생명의 상실로 나타날지라도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그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그 사람의 영혼은 사나 죽어나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합니다.

그러나 육체적 생명이 떠난 사람은 이 땅에서 사랑할 기회는 마침이 되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일절 교감하거나 교통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에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가 되심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평화를 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살롬은 예수님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이시오,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부와 성령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을 삼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에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사람의 죄로 인하여 세상이 어지럽게 되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도 사탄에게 넘어갔습니다.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그때로부터 세상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화평을 시기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정죄할 수 없는데 세상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사람들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정죄를 스스로 받으셨습니다.

세상의 정죄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므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기소하는 말이 옳다고 예수님은 침묵으로 동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하여 스스로 고난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자기 몸을 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사랑만이,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만이 이를 행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죄인이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인데 사람이 죽으면 육체의 생명은 흙이 되고 거듭나지 못한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생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혼이 거듭나서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다면 죽어도 그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품에 안식합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의 영혼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대신하여 그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였기에 그 사람의 영혼은 이미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땅에서 죽으면 육체를 상실함으로 세상에서는 사랑을 발견하는 것은 단절되고 맙니다.

사람이 사랑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육체의 죽음을 말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무엇으로? 예수님은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몸을 내어 주심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사랑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에 사랑이신 예수님은 영화로운 사랑의 몸으로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정을 입은 사람들의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화로운 몸으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성부 하나님과 한 몸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세상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을 기소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사람이 사랑을 행하지 아니함을 기소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처음부터 사랑을 알지도 못하였기에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세상은 사람의 교만을 먹고 삽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아는 사람이 사랑을 알고 사랑을 알기에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사랑을 막지 못합니다.

오직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사랑을 먹고 마시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결정적인 열쇠는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이며 자신을 변호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세상에서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압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말을 씻겨주면서 가르친 예)

 

성경은(4:23)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먼저 마음이 무엇입니까?

 

국어 사전에 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과 태도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들, 감정이나 의지, 생각이나 기억이 자리 잡은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각 사람의 자유 의지에 처음부터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아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의 자유 의지에 두었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곧 사랑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보는 것, 듣는 것, 냄새를 맡는 것, 맛보는 것, 감촉을 느끼는 것으로 정보가 들어오면 마음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통과하여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마음을 주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결정되며 그 결과가 현실로 나타납니다.

 

만약에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마음의 생각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4:23)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4:20-22)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말씀)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지혜, 곧 주님의 말씀)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라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자녀의 마음에 두신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으로부터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자유주의 신학자나 무신론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녀에게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목사는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도와 성도의 가정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열흘 전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의 자녀인데... 들의 백홥화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공중에 새도 하나님께서 먹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이리요)

 

영의 세계를 깨닫지 못함으로 무 방비 상태로 자신을 세상에 노출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부모에게 무어라고 위로할 것인가?

 

가족을 세상으로부터 지키지 못하였다.

, 이는 먼저 된 자의 책임에서 우리가 자유 할 수 있는가?

 

아이를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동생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조카를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마귀의 공격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원수를 무방비 상태로 대적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일에 대비하도록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병든 자를 고쳐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되었으나 말씀하신 대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예수께서 하신 같은 일을 세상에서 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단호하게 돌아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을 이루어 그들에게 능력을 주어 동네에 보냈었을 때 제자들도 천국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고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기 전에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10:16).

 

하나님의 지혜와 예수님을 닮은 순결이 세상에서 원수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원수가 누구입니까?

사람의 인본주의 생각에 따른 마음이요. 거짓의 악한 영들입니다.

제자들은 배운 것으로 그들의 능력으로 그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을 때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말씀이 생각이 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행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그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귀신을 쫓아내기에 앞서 성령의 능력으로 착하고 의롭고 진실 된 삶의 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나타나고 증거되는 곳이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혜를 갖추도록 훈련을 시키고 순결해야 함을 목적하도록 이끌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의 방법을 배우고 삶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는 지혜는 예수님의 말씀과 믿음의 행함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살아가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 곧 세상으로 위협받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말씀과 동행하지 않는 길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실족하는 것의 앞잡이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어도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말씀과 동행함이 없이 행할 때 대적하는 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되고 맙니다.

 

지식과 종교적인 체험이 더해지면 자만심이 찾아옵니다.

자만심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며 곧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요 밟아 버리는 지뢰입니다.

원수가 묻어놓은 지뢰를 밟아 버리면 심하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겸손함을 목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아담이 낙원에 있을 때 타락하였으며, 솔로몬이 성경을 세 권이나 기록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지만, 말년에 넘어졌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랜 옛적에 루시퍼 자신도 한 때는 하늘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던 존귀한 천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살고 교만하면 귀신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되고 시험을 당하고 실족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벧전 5:5-9)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지만,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고 마귀를 대적하라.

하나님 말씀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자를 물리치라고 합니다.

잠언서 저자는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쓰러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는 수 천년을 오면서 온갖 속임수로 사람의 눈과 귀와 마음을 속여왔습니다.

사람의 연수와 경험은 짧은 한 순간에 지나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듭난 영이 영원하여도 이 땅의 삶에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서는 담대하나 결코 무모하거나 경솔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님께서 주신 영적 권세를 사용하되 결코 주제 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지키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아니하고 열정만으로 경박하게 영들을 대적하였다가 심하게 다치거나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상실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세상과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영들이 있고 사람은 인본주의 사상으로 무장이 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피하여 산에 가서 나는 자연인이다하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항상 이웃과 함께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생각 없이 나오는 말들로 인하여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배우면 일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는 것을 막아주는 힘이 있습니다.

 

다툼을 피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인데 모든 일에 있어 변명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움이 필요하고 배운 것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겸손을 실천함으로 배울 수 있는 기막한 곳이 바로 가족이요 가정입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로부터 당신은 감정이 둔하다는 비난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저라는 사람입니다.

아내의 말에 대하여 잘못 반응하면 좋게 시작한 부부 사이의 대화가 엉뚱하게 전혀 다른 상황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남편은 거의 본능적으로 아내의 말에 잘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럴 때 그냥 단순하게 당신의 말이 옳다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내의 지적하는 말이 대부분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에 함께 하나님께 다정다감한 사랑을 구하고 나아가면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들도 남편으로부터 당신은 내가 일터에서 얼마나 시달리는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하는 이 말도 거의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당하는 일들을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당신만 힘드냐고 말하면 말다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자신을 낮추고 남편의 말에 동의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에 같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 만사형통입니다.

 

부부 사이 뿐만 아니라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도 이 방법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사랑이 부족하다고 말을 들을 때 당신 말이 옳습니다.

나는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예수님으로 나의 모든 사랑이 부족한 죄까지도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고 대답하면 우리의 볼품없는 불완전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바뀌고 평안이 우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어느 책에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존재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극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반응합니다.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앞에 가는 차가 깜박이도 넣지 않고 멈추거나 하면 거의 바로 반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충만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데 이런 사람이 진짜입니다.

우리는 바로 입으로 말이 나깁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으니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사랑이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은 목사입니다.

그래야 성도들의 가정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위해 기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다 같이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의 가정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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