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말씀

  • 예배와 말씀 >
  • 주일예배말씀
2024년 9월 15일 제목: 다스리는 삶(추석을 맞이하여)
김종곤 2024-09-19 추천 0 댓글 0 조회 12
[성경본문] 레위기23:33-36 개역개정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915일         제목: 지키고 다스리는 삶(추석을 맞이하여)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에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표징들과 기일들과 날짜들과 연도들을)를 이루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구는 하루에 한번 자전하고 태양을 한 바뀌 도는데 365.25일이 걸립니다.

태양력의 기원은 BC 18세기경 이집트인들이 1년을 365일로 하고 이것을 30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연말에 5일을 더하는 식으로 달력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성경과는 무관하며 성경에 나오는 달은 항상 음력이 기준입니다.

 

달은 한달(29.53)에 한번 지구를 돕니다.

음력으로 달이 지구를 열두 번 도는데 354일이 걸립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뀌 도는데 365.24일이 걸립니다.

우리나라는 양력을 기준으로 사용하지만, 음력도 표기합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음력과 성경의 음력하고는 두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는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음력으로 214일 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르기를 출애굽한 이 달을 해의 첫 달(12:2)로 삼아 그 달 그 날을(12:14) 여호와의 절기로 삼아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가지는 윤달을 넣는 방식이 다릅니다.

동양은 평년보다 한 달 많은 해는 달에 끼워서 사용하지만, 이스라엘은 윤달을 13월로 처리합니다.

이런 차이가 있음으로 동양에서 사용하는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음력보다 숫자상 뒤떨어지고 한 달 정도 차이가 납니다.

 

또 하루를 시작하는 날의 시간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해가 지고 달이 나타나는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고 동양은 달이 뜨지 않고 해가 뜨는 아침을 하루의 시작으로 계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살아갈 때 너희의 하나님을 기념하여 안식일과 3개의 절기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초막절(나팔절,장막절,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3:5-6) 첫째 달 열나흘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열닷새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맥추절은 약속의 땅에서 농사하여 얻은 첫 수확물을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날입니다.

 

(23:10-1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맥추절)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튼날에 흔들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뽁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 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3: 15-16...21)안식일 이튼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을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튼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오순절, 칠칠절) 새 소제(새 곡식제물)를 여호와께 드리되 ...

(22)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초막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 생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3:2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나팔절)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27)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아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대 속죄일) 됨이니라

 

(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장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유월절은 과거에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기억과 감사요

오순절은 현재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요.

초막절은 미래에 하나님의 영화에 대한 축제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은 절기를 국가적 명절로 지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모세 오경에 선지서에 시편에 오리라고 예언된 메시아였다는 것을 극히 소수의 유대인 외는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요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를 기념하라는 것도 폐하신 것이 아니요 완성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절기를 대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 되었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절기에 대한 교훈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생은 6일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고 하루는 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입니다.

유대인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 것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요 곧 시작과 마침이 되심으로 주일에 성도들이 자신들의 일을 내려놓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고 새 생명의 참여를 기념하고 주의 말씀으로 즐거워함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들은 각 국가에서 그들이 기념하는 날이 있고 명절로 지키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추석이지만 전 국민이 명절로 기념하는 날은 설날과 추석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주신 일반 은총 가운데서 추석 명절의 의미를 성경에서 찾는다면 초막절(수장절)에서 주관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추석은 한문으로 가을 저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을은 일년 농사한 것을 거두는 계절이요 곧 추석은 가을의 시작이요 추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주심으로 심은 것의 열매를 거두어들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의 날입니다.

성도들의 가정은 추석 명절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 사랑의 정을 나누고 기뻐하는 아름다운 명절을 맞이하고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와 성도의 가정은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지키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적극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도로서 한국적 문화에서 가장 크게 부딪히는 것이 바로 조상에 대한 제사 문제입니다.

 

조상에게 예를 표하는 것은 효에 대한 것인데 문제는 이미 돌아가신 조상에게 산 사람이 예를 표하는 방식이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금한 초혼 다시 말하면 돌아가진 분의 혼을 산 사람이 부르는 것인데 이러한 행위는 거짓된 영을 부르는 것이요 위험합니다.

이는 귀신이 죽은 조상의 영혼으로 위장하고 산 사람으로부터 절을 넙죽 넙죽 받아먹음으로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전혀 교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돌아가신 분들을 부르거나 제사하는 것을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모 산소에 갈지라도 돌아가신 분이나 사람들을 의식하여 술을 따라놓거나 절을 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아니하도록 지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분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에서 유의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함이 마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곧 성도입니다.

성도의 뜻이 무엇입니까?

부름받은 자, 구별된 자,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히브리어로 하면 메시아입니다.

곧 성도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구원자를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성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오셨는데 바로 그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대신하여 우리를 죄에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곧 세상에서 구별된 성도로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살으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시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심으로 성 삼위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가 성취되었습니다.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의 작정과 성자 하나님의 구속과 성령 하나님의 적용하심이 예수께서 오심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절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예수님으로 온전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으셔서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은 자손을 많게 하겠다. 땅을 주겠다. 열국에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열국을 내게로 이끌어 구원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사랑에 근거한 약속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들을 애곱 고센 땅에서 번성하여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여 약속하신 땅으로 이끌어 취하게 하였고 제 때에 비를 주심으로 다 잘되게 하시고 그 땅에서 번성하게 하였지만, 진작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소견이 좋을 대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스스로 여겼지만 진작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의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크게 오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사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기 때문이요, 창세 전에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른 영을 따라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저들 마음대로 하였지만

하나님은 작정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는 타락한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이요 메시아이신 예수님 통하여 이루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적용하게 하심을 기록한 역사를 말합니다.

성 삼위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님의 임재와 적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1서에서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너희에게 말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 계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옛 계명이니 바로 여러분이 들었던 말씀이다( 1 2:7)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어둠이 지나갔다.

예수님은 빛이시오 빛이 세상에 비취니 어둠이 물러갔다.

 

곧 이제는 어둠이 권세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법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몸을 내어줌으로 온전히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을 세상 어둠의 권세에서, 다시 말하면 죄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은 영화로운 몸으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 주 주님께서 제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리워 가사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빛이 영원토록 우리를 비추이고 있습니다(1 2:8)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생입니다(1 2:25)

곧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님과 함께 하였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합니다.

이는 세상은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2 2:1)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세상은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이 사랑을 알지 못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을 말씀으로 압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랑을 나타냄으로 사랑으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성도는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사랑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물(세례를 받으심)과 피(대속의 보혈)로 오신 분이십니다.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고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증언자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한 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성자 하나님이시오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사 지기 몸을 죄의 대속물로 내어주심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여 원수들의 한 가운데서 곧 세상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는데 다스리기는 고사하고 왜 성도의 삶이 상처투성이가 됩니까?

상처투성이가 되는 성도의 삶을 묵인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또 무엇입니까?

세상의 불의가 여전히 성도들을 위협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는데 왜 두려워하며 그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실수를 거듭합니다.

물론 우리는 실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말씀을 알고 삶으로 행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를 마치 상관없는 자식처럼 여기고 내버려 두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를 사랑하사 가르치고 이끄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심을 알게 하려고 두신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방식은 가정을 인생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일반 은총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섭리하십니다.

특별 은총의 은혜를 입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인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지만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며 살아가는지는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서 난 믿음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때가 되면 서로 사랑함으로 둘이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부모가 되어봄으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을 삶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들째 방식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신 후에 오순절 날 성령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교회를 세상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죄에서 구원을 받은 하나님 자녀들을 위한 것이요

하나님께서 일반 은총 안에 모든 사람을 두신 것과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서 세상에서 교회가 세워진 그 지역에서 빛으로 드러나라는 것입니다.

곧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도 땅에 발을 딛고 똑같이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한 장소에 붙박이처럼 가두거나 자신들만의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진실로 배운 사랑이 예수님으로부터 왔다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게 됩니다.

사랑을 실천할 그곳이 가정이 되고 가문이 되고 일터가 되고 동네가 되고 사회가 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나라가 그로 인하여 확장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들의 한 가운데서 다스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이요 그 사랑의 원천은 예수님입니다.

원수와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 앞에서 사랑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분쟁과 억눌림과 두려움과 근심 걱정으로 인한 심한 염려와 참지 못함과 정죄와 낙심과 마음의 상실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마주치는 현실입니다.

 

다툼과 시기가 있으며 마음의 부딪힘과 무정한 사람의 말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내 뜻을 강요하지 아니하고 다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평강을 선포하고 화평을 이룸으로 원수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으며 자신이 인정하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모든 사람 앞에서도 성도이기에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다스리는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당연히 기도하라는 성령님의 싸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합니다. 아멘

 

진리와 성실과 신뢰는 예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진리를 말하면 주의 진리가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가 삶에 성실하면 주의 성실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면 주의 신뢰가 우리를 인도합니다.

기도합시다.

 

 

 

 

 ​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4년 9월 22일 제목: 하나님의 나라 김종곤 2024.09.22 0 11
다음글 2024년 9월1일 제목; 누가 마음을 지키는가? 김종곤 2024.09.01 0 18

6305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광로 208-22 (하귀1리) 제주예평교회 TEL : 064-746-5506 지도보기

Copyright © 제주예평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
  • Total12,918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