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말씀

  • 예배와 말씀 >
  • 주일예배말씀
2024년 10월6일 제목: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김종곤 2024-10-06 추천 0 댓글 0 조회 5
[성경본문] 요한복음8:2-11 개역개정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41006일 제목: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본문: 요한복음 8:1-11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남자든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이름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줍니다. 보통 부모나 조부가 지어줍니다.

이름을 지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이 짓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 날, 이 소중한 시간에 무슨 이름 이야기를 합니까?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목사는 예수님 이야가를 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천사를 보내 요셉에게 꿈에 알려주었습니다.

2024년 전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땅 나사렛이라 하는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 사람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 마리아라는 처녀와 약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동침을 하지 않았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한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착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관계를 끊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깊히 생각합니다.

 

밤에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납니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아이는) 성령으로(하나님의 영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하나님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에수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죄에서 구원할 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 네 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입니다.

마태복음은 마태는 예수님의 행적을 직접보고 말씀을 들은 것을 기록하였고, 마가복음은 마가는 베드로를 수행하면서 사도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였고, 누가는 사도들로부터 예수님의 행적을 들은 사람들과 바울로부터 듣고 자세히 살펴서 기록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을 쓴 요한은 열두 명의 사도 중에 한 분입니다.

요한은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온 것을 알았고 그 안 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예수님은 336개월 정도의 짧은 생애를 이 땅에서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여 3년 반 동안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자기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예수님의 열 두명의 제자들은 한명은 예수님을 은 삼십을 받고 팔아버렸고 베드로를 포함한 열 명은 자기들도 잡혀갈까 두려워서 다 도망가 버렸고 한 명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 여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합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바로 이 제자가 요한복음을 쓴 요한입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평생을 같이 살았고 요한복음, 요한1, 2, 3,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표적과 행적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이야기도 요한복음에만 실려 있습니다.

성경 안으로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으로 가 봅시다.

 

사나운 군중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우고 손에는 돌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 날도 예수님은 늘 그러하셨듯이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그 무리 가운데 세우고 의기 양양하게 예수님을 보고 이 여인이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예수님께 고발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인은 돌로 치라고 되어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당신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예수를 고발할 조건을 만들려고 하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 자신의 말씀과 위배되고 또 로마법을 어겼다고 고발할 조건이 생기고 용서해 주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긴 것으로 정죄하고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처음부터 적대시하였고 끝까지 예수님을 공적으로 몰아 어떻게 하든지 올무에 빠뜨려서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예수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것이고 이제야 말로 제대로 걸려들었다고 의기양양합니다.

 

이 나쁜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여인에 대한 정당한 판결에는 관심이 일도도 없습니다.

왜 간음한 남자는 끌고 오지 아니하고 이 여자만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하면서 끌고 옵니까?

저들에게는 산헤드린이라는 법정이 있으니 죄인을 고소하고 재판하려면 그들의 법정으로 가면 되는데 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께 가져옵니까?

 

그러나 저들의 의도대로 저들의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잡혀온 여인과 둘러선 사람들을 가만히 둘러보시드니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 쓰시려는 듯 잠시 침묵합니다.

예상치 못한 예수님의 행동에 그들이 당황합니다.

둘러선 그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채근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며 돌연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셔서 땅에 무언가를 쓰십니다.

 

저들에게 들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이었습니다.

돌로 치라든지 용서하라든지 둘 중 하나의 답변을 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제는 저들이 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들에게 던지신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던지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여인을 정죄하고 돌을 들고 치려는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저들의 숨겨진 죄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드러나자 어른들과 젊은이까지 슬거머니 돌을 내려놓고 하나씩 하나씩 소리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는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여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에 실린 이 일이 우리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들이나 우리나 일반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리도 예외없이 양심에 가책을 받고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건을 말씀을 통하여 묵상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여자를 정죄하던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자리를 피합니다.

곧 그들 자신들이 정죄를 피할 수 없는 죄인이요 죄인이 죄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떠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드러난 죄로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은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여자여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떨고 있던 이 여인만이 예수님과 같이 있습니다.

가라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오직 이 여인만이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고 죄값으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예수님 자신을 나는 ...이다고 선포하시는 말씀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그 말씀의 확실성과 진실함을 입증합니다.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8:12) 나는 세상에 빛이다...

(10:7 나는 양의 문이라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3) 사람이 거듭나자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63)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는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길입니까? 인생길입니다.

인생길은 단 한번 걸어가는 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인생길을 사랑과 용서함으로 생명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죄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일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은 내가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믿는 마음을 주셔야 믿어집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죄에서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리하면 구할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고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합니다.

소망을 말하라고 합니다.

꿈을 말하라고 합니다. 비젼을 품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라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뒤로 물러가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주어진 삶을 개척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반드시 심판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감당하셨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15: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가 내가 명한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내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으로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나사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그리고 성령강림입니다.

 

베드로도 요한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많은 받은 제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날 그 밤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를 찾아오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묻습니다.

예수께서 세 번이나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 베드로는 근심하여 말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심으로 베드로를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간음한 여자의 죄가 큽니까? 예수님을 모른다고 진짜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죄가 큽니까?

예수님은 네가 왜 간음을 하였느냐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너를 그렇게 사랑하였는데 어찌 나를 모른다고 하였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내 양을 먹이라

 

우리를 향한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이 놀라운 진리를 진실로 우리가 안다면 어찌 우리가 거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가 대충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가 죄와 타협하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거듭나기 전 우리 안에 있던 죄의 성품으로 인하여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온갖 좋은 것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고 다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속이고도 안 그런측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나와 같이 걸어가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요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만 하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양심에 따라 살면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선이나 악이나 다 상대적인 것이고 건강하고 즐겁게 살다가 죽으면 끝이고 그 다음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사랑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으로부터 왔고 용서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로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사랑으로 살고 이 세상을 떠나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히 있게 됩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고 심판하려던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어른부터 젊은 사람까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양심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고 뒤로 물러감으로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함으로 죄에서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면서도 죄로부터 돌아서지 못하고 사랑함으로 살아갈 기회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과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계명과 율례를 지킨다고 하면서도 모세의 계명을 크게 오해하였고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신 것과 그 사랑의 시작은 용서함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 정신은 죄를 방지하는데 있습니다.

모세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형벌을 가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경고 삼아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용서를 통하여 더 이상 죄를 반복하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결핍을 보고 정죄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돌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판단하려는 우리의 본능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무 조건적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은 용서와 구원이지 정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사람들이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은 것이요, 이는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우리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 안에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죄의 성향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드러날 때 가만히 숨어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하여 문을 닫아버리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갈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 벽이 있습니다.

이 벽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은 내 쪽에만 손잡이가 있습니다.

이 문을 내가 열어주지 아니하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문밖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문을 열 수 있지만 예수님은 가만히 노크하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에수님은 문 밖에서 사랑하는 누구 누구야 하고 이름을 부릅니다.

내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만 들어도 압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아멘.

다 같이 기도합시다.

 

 

 

 

 

 ​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다음글 2024년 9월 22일 제목: 하나님의 나라 김종곤 2024.09.22 0 12

63059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광로 208-22 (하귀1리) 제주예평교회 TEL : 064-746-5506 지도보기

Copyright © 제주예평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
  • Total12,918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