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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2일 제목: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
운영자 2023-11-12 추천 0 댓글 0 조회 19
[성경본문] 누가복음12:13-21 개역개정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31112일     제목: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

본문: 12:13-21

예수께서 갈릴리 온 동네를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워하며 따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병든 사람을 다 고쳐줍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에 퍼졌고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 소견에 좋을대로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혹시 이분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 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은 가난한 나사렛 사람 목수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무시하기도 하였지만, 그가 어디서 이런 지혜를 배웠는가 궁금해 하며 그는 랍비라 그는 선생이라 여기고 따릅니다.

예수의 소문이 예루살렘에 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들리니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대적하고 시험하고 기회를 잡아 죽일 궁리를 합니다.

 

어느 날 수 만명의 무리들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다고 누가복음 12장에서 기록합니다.

수 만명이 모였다는 것은 유대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셨을 때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무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랍비여(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여 주소서 하고 요청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있는데 땅에 대한 것을 요청하는 이 사람에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자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의 유산을 가지고 형제들이 다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모든 형제간의 갈등의 원인이 탐심에 있습니다.

 

저의 부친이 하셨던 일은 목수였습니다.

그냥 목수가 아니라 배를 만드는 일을 하셨습니다.

딸을 둘 낳고 또 한 아이가 잉태되었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군대에 징집되어 입대를 합니다.

전사한 건지 포로로 잡혀간 건지 생사를 알지 못하였지만 3년 만에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휴전이 되었지만 전시상태라 총을 휴대하고 왔는데 한 전우와 함께 왔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었고 두 살이 되었습니다.

군인 두 사람이 아이를 보고 아버지라 이리 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정확하게 처음 보는 아버지를 알아보고 아버지 품에 안겼습니다.

저와 열 살 차이가 나는 큰 형입니다.

아버지는 7년 반 만에 전역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둘째 형이 때어났고 이어서 딸이 태어나고 그 다음에 저요 그 다음에 아들과 딸이 태어났는데 모두 44녀입니다.

 

사는 곳이 대마도가 보이는 거제도 바닷가인지라 비록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 할 수 있어도 곡식을 늘 부족하고 섬은 험하고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어버님은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배 만드는 일을 하였기에 자기 손으로 수고한 것으로 비록 천수답이지만 논도 일곱 마지기를 장만하고 땔감을 공급하는 산도 장만하고 동네 바닷가에 작은 밭을 사고 산에서 소나무를 베다가 바다에 떨어뜨려 끌고 와서 껍질을 벗겨내고 살아갈 집도 지었습니다.

 

아버님이 배를 만드는 것을 20살이 되기까지 많이 보았습니다.

도면도 없이 오직 톱과 대패와 끌과 도끼와 자귀로 좌우 대칭이 되는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울 때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널판과 널판을 서로 연결할 때 못 박는 망치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릴 듯합니다.

그냥 못을 박는 것이 아니라 장단이 있어요.

땅 따다당 땅, 땅 따다당 땅 그 망치소리가 아주 경괘합니다.

나무를 설 때 톱질 소리도 다릅니다.

대패할 때 대패 소리도 다릅니다.

제가 한번 해 보겠다고 하면 아버님은 제 망치소리, 톱질 소리, 대패 소리만 들어도 제가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바로 압니다.

하나 하나 빈틈이 없도록 세밀하게 작업을 합니다.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아. 이 배를 만드는 것도 기준이 반드시 있단다.

그 기준은 수직을 측량하는먹통과 직각자란다.

바로 수직과 수평인데 이것은 십자가라.

십자가가 없으면 배도 집도 만들 수 없단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간혹 술을 드시고 기분이 좋으시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농사짓는 것은 어머니하고 저가 맡아 하였고 아버지는 장남인지라 남동생 둘과 여동생 살림차리는 뒷바라지 하느라고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저의 큰 누님은 일찍 시집가고 둘째 누님도 외지에 나가 살고 큰 형은 어머니의 의지로 부신공고를 졸업하고 외지로 나갔고 둘째 형은 일찍이 해군에 장기 하사관으로 입대를 하였고 저는 동생 둘을 데리고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고향에서 살았습니다.

 

20살에 군에 입대하고 건강한 몸으로 제대를 하고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분은 제가 제대하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는데 저는 제대한 지 9일 만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큰 형이 개포동에 살고 있었기에 서울에가서 배관 자격증을 따고 중동에 근로자로 가서 돈을 벌어와서 넓은 논밭을 사고 트렉터도 시고 가축도 키우고 제대로 된 성공한 농사꾼이 되기를 목적하였습니다.

 

배관 자격증은 땄지만, 중동에 근로자로 나갈 수 없었고 현장 일을 하며 수년을 하여도 소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휴일과 주일에 쉬는 직장으로 가고 싶다고 하나님께 구하였고 급여는 보잘 것 없이 작아도 정시에 출퇴근하고 모든 공휴일과 주일에는 쉬는 직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고향 집에 흑백 TV도 사 드리고 명절이 되면 내려가 부모님을 뵈었지만 고향을 떠난지 6년이 지나가도 손에 쥔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님의 소개와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단칸방을 부평 가정동에 마련하였는데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가구도 생기고 냉장고도 크고 TV도 인치 수가 좀 되고 이불도 있고 날아갈 듯이 좋았습니다.

신혼이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살림 차린 남자는 일년 동안은 전쟁에 내보내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결혼사진을 보는데 아내가 진짜 미인이었구나. 그때는 그냥 아무것도 몰랐는데......

 

둘째 형은 해군에 있어 사는 살림이 빠듯하고 큰 형은 외국에도 나가고 아내와 함께 유럽 일주 여행도 하고 그런대로 잘 살았습니다.

부모에게 소홀하고 동생들에게도 소홀하였지만 그래도 형과 형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머님이 저희들을 키울 때 형은 아버지 대신이라 형이 무어라하면 죽는 시늉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형이 잘 되면 동생이 가서 형수보고 밥 한 그릇 달라 하고 먹을 수 있지만, 형은 제수씨보고 꿂을지라도 밥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구슬이 있어도 꿰어야 구슬이 되니 친구를 조심하고 열심히 부지런히 성실이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논 언덕에서 떨어져 갈비뼈를 다쳤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를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야위고 수척하였지만 그 때 저는 결혼을 하였지만, 월급이 너무 빠듯하여 부모님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큰 형과 형수가 좀 챙겨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내보고 당신이 시골에 가서 부모님을 좀 살펴줄 수 있겠는가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고 아내는 고향으로 내려갔고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답이라도 일부 팔아서 병 간호에 사용하자고 하였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자신은 비록 몸이 아프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지라도 자기 손으로 이룬 재산을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산으로 자식에 남겨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천하셨습니다.

팔 남매가 있었어도 아버지의 소천을 본 사람은 저의 아내였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자기 앞으로 이전하겠다고 동생들에게 동의 구하였습니다.

형을 믿었기에 형 앞으로 논도 산도 집도 다 이전이 되었습니다.

 

시골집에 제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자기 앞으로 한 아버지의 유산인 산과 논을 팔아버렸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어머니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상심을 하였고 믿었던 큰 아들이었기에 그 때부터 술도 드시고 거의 말 문을 닫으셨습니다.

 

형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은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다만 고향에 가면 남의 소유가 된 땅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 곳에 선교 센타를 지울 수도 있는데 하고 혼자 괜히 넉두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이요 탐심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설교를 하다가 엉뚱한 길로 갔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부모의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해 달라고 요청한 이 사람은 아마도 부모가 남긴 유산이 많았는가 봅니다.

부모가 남긴 유산을 나누기란 그 때도 쉽지 않았는가 봅니다.

형제들은 이 문제를 서로 의논함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더 많은 몫을 가지려고 하였거나 아니면 서로 더 좋은 땅을 가지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고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탐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공평과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가득한 것을 보셨기에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예수님께서 답을 주셨어도 불평할 것이기에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탐심이 무엇일까요?

탐심이란 내 손으로 수고한 것이 아닌 무엇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요,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요,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무엇을 갖고 싶다, 무엇이 돠고 싶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요 욕망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을 금하거나 부요함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탐심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탐심을 가진 사람은 가진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눅 1216절에서 또 비유로 말하여 이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한 부자가 있었다.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다.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리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리라

내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즐거워하리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말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는 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 부자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밭에 소출이 많았다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수고하였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늦은비와 이른 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일에 성실하고 경영을 잘 한 사람입니다.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농사가 안돼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농사가 잘돼도 걱정입니다.

농사가 잘 돼서 쌓을 곳이 부족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창고를 새로 지어 곡식을 보관해야 합니다.

요셉도 애굽에서 총리로 있을 때 7년 풍년이 계속될 때 저장고를 지어 곡식을 보관했습니다.

이 부자도 흥청망청 쓰지 않고 곡간을 크게 지어 보관한 것은 현명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식당을 하거나 작은 사업을 하다가 잘돼서 자리가 부족하고 일터가 좁으면 새로 크게 확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이 후에 발생합니다.

 

이 부자는 창고를 크게 지어 곡식을 보관하고 물건을 쌓아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목적입니다.

이 부자에게는 그의 성실과 노력과 부지런함과 수고함으로 성취한 것은 좋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로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즐거워하자 합니다.

이 부자는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의 쌓아둔 재산이 자신의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대 부분의 사람들이 이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이 부자는 자기 일에 성실하였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이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전혀 다릅니다.

어리석은 자여 합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이 바보야 하는 뜻입니다.

미련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합니다.

이 부자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창고를 짓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먹고 즐기자 하고 집도 짓지 않고 저축도 안 하고 가진 재산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아무 일도 않하고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리자 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이 부자는 내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음으로 내 영혼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기 영혼의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재물이 그의 영혼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물이 그의 영혼에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고 곧 이는 재물에 그의 영혼이 팔린 것이며 바로 그것이 탐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가치관과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재물의 힘이 얼마나 크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재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재물로 사지 못합니다.

생명을 재물로 사지 못합니다.

살롬을 재물로 사지 못합니다.

문제는 재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결여가 문제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가 원하는 것을 공급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주셨습니다.

마치 창고 열쇠를 맡긴 것과 같습니다.

창고에 있는 씨앗을 가져다가 땅에 심고 거름을 주고 잘 가꾸어서 열매를 내고 하나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쓰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곡간에서 원하는 것을 무단으로 가져가서 자신의 탐심을 위해서 쓰려고 하고 쓰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 창고는 씨가 보관된 것과 같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강냉이를 심으면 강냉이가 나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땅을 만들고 거름을 주고 가꾸어서 좋은 열매를 거두어 창고에 모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가꿀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봄이 있고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듯이 평화로울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 소년일 때가 있고 청년일 때가 있고 장년일 때가 있고 노년일 때가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여러분의 삶을 목적하십시오.

믿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성실한 삶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부요함을 바라보고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오늘도 걸을 수 있고 잠잘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그 무엇보다도 사랑할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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