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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31일 제목: 낡은 옷과 묵은 포도주
김종곤 2023-12-31 추천 0 댓글 0 조회 23
[성경본문] 누가복음5:36-39 개역개정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31231일        제목: 낡은 옷과 묵은 포도주

본문; 눅 5:36-39        김종곤 목사

 

오늘이 20231231일 이번 해 마지막 날이요 또 이날이 감사하게도 주일입니다.

저는 저의 인생에서 60이 넘으면 새 일을 하리라고 마음을 정하고 왔는데 벌써 3년이 지나고 64세를 하루 앞두고 되었습니다.

 

거제도 거친 바닷가에서 태어나 20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군에 입대하고부터 사실상 고향을 떠나 10년을 자신과의 싸움에 있었고 30에 결혼을 하고 잠간 부평에 살다가 제주도에 와서 30년을 살아왔습니다.

 

60이 되기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뜻을 세우고 목적하는 것을 이루기도 하였지만,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에서 참으로 감사한 것은 20살 때 군에 입대할 때에 성경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성경이 얼마나 귀하고 귀하며 소중하고 소중한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해와 달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오늘날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날수가 120년입니다.

 

시편 90편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90편은 모세가 광야 40년이 되던 해의 어느 날에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120년을 이 땅에서 살았는데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떠내려가다가 애굽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애굽의 왕자로 40, 자신이 히브리 민족인 것을 발견하고 애굽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두 자녀를 낳고 양을 치는 일을 40, 그리고 40년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광야 40년이 모세의 일생이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찾아주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았고 모세는 80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예수께서 오시고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350여년이 지나서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과 같이 열국으로 널리 전하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사랑하사 사람의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을 계시하시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 증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저는 20살 때 성경을 저에게 선물한 형제가 있었고 3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각인이 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에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사업을 하면서 성취와 실패의 경험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60이 지나서 남은 인생은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고 전하는 삶을 목적하고 걸어가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부족하고 모난 부분만 보여서 힘이 듭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새날과 새해를 주사 지난해를 뒤로하고 새로운 일을 소망하고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일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야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아내는 저라는 사람을 어쩌다가 만나가지고 저 때문에 힘이 많이 듭니다.

그동안 이것 저것 저질러 놓은 것이 많아서 해가 가기 전에 정리 정돈을 하고 낡아진 것을 고친다고 하였는데 다 마치지는 못하고 마음은 견딜 만 하는데 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전에는 무엇을 들어도 무거운 줄을 몰랐는데 지금은 얼마나 무거운지 일을 하고나면 여기저기 아픕니다.

어제도 오전 안에 하던 일을 마치려고 했는데 오후까지 연장이 되었습니다.

 

오후 2시반쯤 되었나요

권사님이 전화가 와서 목사님 어디 계세요 저 교회 왔어요 하는데 아이고 목사가 되 가지고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는 장거리 선수인데 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안 그런 척하고 내려와서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안티푸라민 바르고 자다가 일어나니 12쯤 되었어요

온몸이 저리고 쑤셔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니 은혜입니다.

이럴 때 탄산 온천 가서 몸을 담그고 오면 좋을 텐데 오늘은 주일이라 여러분과 함께 말씀 안에서 은혜도 나누고 주님께 예배로 나아가야 하기에 성령님의 만져주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함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 일지라도 사람들의 비난이나 칭찬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집사든 목사든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특히 목사는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의 마음에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그 말씀이 자신의 심령에 녹아들어 입으로 나올 때 경우에 합당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심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못난 목사와 같이 은혜를 나누는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긍휼히 여겨 주셨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 들고 마주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말하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게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합니다.

 

왜 여호와의 사자가 여리고를 치려고 전진하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길을 딱 가로막고 서서 칼을 들고 서 있습니까?

왜 여호와의 사자가 칼끝을 여호수아를 향하고 말씀하기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신을 벗어라고 말씀합니까?

칼은 성령의 검이요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발을 벗는 것은 전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야 내가 너와 함께 하겠으니 너는 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말을 듣고 온전히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와 신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 나의 신념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권위를 만났을 때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천사가 제단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또 이사야는 주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말씀이 들릴 때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우리 자신 안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견고하게 형성된 요새가 있습니다.

그 크기가 차이가 있고 작고 많음에 차이가 있지만 우리 모두는 내 안에 형성된 자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자신의 심령 안에, 현대적 용어로 말한다면 잠재의식 안에

형성되어 있는 말씀에 저항하는 요새를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 새 생각, 새 영, 새 성품, 새 이름까지 주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거듭난 것은 이제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순종함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여전히 감추어져 있는 옛사람의 본성이 요새로 숨어있다면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애를 쓰지만 위기를 만나면 옛사람의 본성이 요새에서 나와 얼굴을 쑥 내밉니다.

그때 보통 우리는 당황합니다.

안절부절하기도 하고 내가 과연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우리를 아시는 주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행하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는 지혜는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라나고 살아오는 환경의 영향으로 지난날의 실패들, 사람들의 무정한 말들, 폭력과 거짓말, 배신 등이 잠재의식 속에 숨어 요새를 형성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줌으로 섬김의 본을 가르치실 때 베드로는 어찌 주님께서 제 발을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하였을 때,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고 그러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에 베드로는 주님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소서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데 여전히 우리 안에 예수님을 닮지 못한 것이 발견됩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내가 여기 있소 하고 두더지처럼 얼굴을 내미는 그것을 그래 알았어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아무도 끓을 수 없단다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로 뽑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우리 안에 우리의 부정적 경험에서 숨어있는 요새 외에 하나님에 대하여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고 잘못 배운 교리들의 요새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때와 환경과 사람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바른 것인가 아닌가에 대하여는 그 결과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경을 오해하여 잘못 가르친 책임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물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왜 이렇게 하였느냐 물을 때 저 사람이 시켜서 했습니다 하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24:4)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성경을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요 기준인데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많은 목사님의 설교들에서 어떻게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해 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특정한 목사님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라갈 만큼 참된 목사나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그 목사님을 통하여 인도함을 받았고 은혜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놓고 예수님께서 확증하시는 말씀으로 확증해야 합니다.

 

다른 목사님의 가르침과 전하는 말을 비판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있어 비판하는 마음이 앞서면 바로 그것이 잘못된 교리의 경험이 요새로 바로 우리에게 영향을 키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귀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도 두 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경청하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각자 확인하고 따를 것은 따르고 버릴 것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늦게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여러 교수님들과 검증된 책들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물론 탁월한 교수님도 계셨지만 부족해도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교수님도 계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동안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여러 목사님과 선교사님을 만나면서 삶 가운데 형성된 저의 기독교 신앙관에 있어 가르치는 교수님과 갈등이 없었고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으며 부족하지만, 말씀을 나누고 전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지금도 배우고 있고 또 앞으로 계속하여 배워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고있는 가르침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가르침이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가르침을 받는 우리 자신이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가르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같이 문제가 있든지 셋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목적이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대면하는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에 기초하여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도록 우리는 목적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낡은 옷과 묵은 포도주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셰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신 가운데 찾아온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내려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쳐 줍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업을 유지하던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와 그들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고 그들을 데리고 예수께서 자라난 곳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하고 다른 동네에도 들어가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를 고쳐 줍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라는 사람을 보고 나를 따르라 하니 그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레위는 자기 집에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님을 청하고 또 세리인 그의 동료들과 다른 사람도 청하여 이제부터 자신은 세리라는 생업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송별식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여 너희들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고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다 하시면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예수를 따른다는 너희는 먹고 마신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혼인 집 손님이 신랑과 같이 있을 때는 너희가 금식할 수 있느냐 그러나 날이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하시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찢어진 낡은 옷에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취하여 붙이면 새 옷만 버리고 낡은 옷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녛으면 포도주가 숙성될 때 부풀어 오르는데 그러면 낡은 가죽 부대는 터져버리고 새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으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고 함이니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였는데 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좋은 경험이든지 좋지 않은 경험이든지 지나간 것을 돌이킬 수 없고 낡은 것이 새것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족합니다.

오늘 우리는 올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각자 우리 자신에 대하여 뒤돌아보고 자나간 것은 아쉬워하지 말고 과감히 버리고 가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사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안에 형성된 경험이라는 요새와 잘못된 교리의 요새를 발견하게 하시고 그것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으로 우리의 인생에 다시는 부정적 영향을 키치지 못하도록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새날을 소망하고 새해를 소망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새로운 열정으로 주어진 삶을 개척함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있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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